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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의 길이는 192km이다. 가운데에 그레이트 비터 호를 통과하여 수에즈 만과 지중해를 잇는다. 수에즈 운하에는 갑문이 없으며, 바닷물이 양쪽 바다에서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자유로이 흘러들어온다.
운하는 대표적인 중립지대로서 이집트에서 관리하며 주권 행사에 제약이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수에즈 운하가 최초는 아니다. 이미 고대 이집트 제26왕조 네카우 2세(네코 2세, 재위 : BCE 610 - BCE 595)는 지중해-홍해를 잇는 운하 건설을 최초로 시도하여 완성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신탁에서 운하가 완성되면 적들이 유리하게 이용하리라고 했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하고 중지되었다.
당시 무려 14만 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에즈 운하와는 달리 나일강 삼각주의 제일 동쪽 끝에 흐르는 한 지류와 홍해를 연결했다. 네카우는 두 척의 배가 동시에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판 운하로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해 양쪽 바다의 함대를 통합 운영하려 했다.
역사상 수에즈 운하의 건설 작업은 여러 차례 시도됐으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재위 : BCE 550 - BCE 486 년 경)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드디어 완성돼 이집트와 페르시아 간 항해가 용이해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세기 초의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초기 이슬람 시대에도 운하가 재개통됐지만 그때마다 침니(沈泥) 현상이 일어나 물길이 다시 막혔다.[1]
이후 대영제국이 운하를 다시 개통시켰으나, 1956년에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 정부에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함으로써 이집트 정부로 반환되었다. 그에 따라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의 상호 협박에 의해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가 관리하게 되었다.
수에즈 운하는 평탄한 지형 때문에 갑문이 없으며, 운하 양 끝 두 바다 사이의 해수면 차이도 미미하다.
평소에 운하에 세 척의 호송선이 순찰한다. 두 척은 남행이고 한 척은 북행이다. 첫 번째 남행 호송선은 매일 아침 시간에 운하로 진입해서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가는데, 여기서 길을 막지 않도록 통행 항로를 벗어나 정박하며 북행 호송선이 통과하길 기다린다. 북행 호송선은 엘 칸타라 인근 우회로에 정박한 두 번째 남행 호송선을 지나간다. 운하를 통과하는 속도는 8노트(15 km/h)로 11~16시간 정도 걸린다. 느린 속도로 움직여 운하 양안이 배가 일으키는 파동으로 침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955년에 대략 유럽의 석유 2/3이 이 운하를 통과했다. 현재 세계 해상 무역량의 7.5%는 이 운하를 통해 이동한다. 2008년 21,415척이 통과하였고, 통과료 수입이 총 $53.81억이었다. 이는 이집트의 2008년 GDP $4,525억의 1.2%에 해당한다. 1척당 평균 통과비용은 대략 $250,000이었다.
수에즈 운하는 중립지대로서 이집트가 관리만 할 뿐 주권이 미치진 않고 수에즈운하에 대한 임의적인 조치는 할 수 없다.
수에즈 운하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할 때 다음 시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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